| 버려지다.. 혹은 버리다.
영화 '트레인스포팅'의 도입부가 떠오른다.
"삶은 곧 선택이다. 학교를 선택하고, 직장을 선택하고, TV/냉장고를 선택하고..."
선택에는 돈이 필요하다. 돈 없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그리고 돈이 많을수록 선택의 폭은 넓어진다. 반면 돈이 적을수록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좁다. 냉정한 사회는 선택의 폭이 좁은 '돈 없는 자들'을 냉대한다. 돈 없는 자들은 쉽게 버려진다.
남자 김씨는 버림받았다. 돈이 없어 버림받고 직장, 애인도 그를 버렸다. 결국 그도 스스로 그를 버렸다. '선택할 능력이 없으면 버려야 한다'는 것은 이 사회의 당연하면서도 냉혹한 원리이다. 하지만 그것은 사회를 움직이는 편리한 이론은 될지언정 영원한 진리는 결코 아니다. 밤섬은 그런 사회의 냉정한 이론을 부정하는 공간이 된다. 돈이 없어 버림받은 김씨는 돈없이 살아가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물에 빠져, 목을 메어 죽고자 했다. 그러나 그는 문득 깨닫는다. 주저앉아 X 를 싸며 얻는 쾌감, 사루비아 꽃을 빨며 느끼는 달콤함, 그리고 밀려오는 추억에 격해진 감정... 이것이 삶의 희망이라는 것을.. 이제 스스로를 버리려던 그는 결국 희망을 등진 세상을 버린다.
| HELP or HELLO
불가(佛家)에서 중생들의 고뇌는 곧 욕망에서 시작된다고 하였다.
부자가 되고픈 욕망, 사랑을 받고픈 욕망, 오래 살고자하는 욕망... 욕망이 이루어지지 못하면 집착이 된다. 하지만 오래된 집착은 쾌락이 되기도 한다. 마치 숨이 넘어갈 듯한 마라톤 선수가 고통이 아닌 쾌감을 느끼는 것처럼...
여자 김씨는 스스로를 가두었다. 관심받기 위해 십수인치의 컴퓨터 모니터 속에 자신만의 유리성을 만들고 그곳에 스스로를 가두었다. '타인의 관심'은 자존심을 북돋아준다. 하지만 진정한 자존심은 타인으로부터 얻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얻는 것이다. 그래서 自尊心(스스로를 높이는 마음)이다. 사회로부터 관심받고자 하는 김씨는 방문을 닫고 커튼을 치고 가족과의 대화도 없이, 타인의 사진과 키보드위의 웃음으로 새로운 인생을 설계하고 자기계발에 매진한다. 자신의 진짜 모습을 가둔 채... 그녀는 스스로를 존경하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살아움직이는 것들과 단절한 채, 스스로 고립되고자 했다. 그런데 멈추어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버려진 섬에서 외계인이 그녀에게 인사를 건넨다. HELP. 그녀는 처음 살아있는 것에게 관심을 보인다. HELLO.
| 삶이 편리해집니다.
태초에 인간에게는 생존의 욕구만이 존재했을 것이다. 입고 먹고 자는 것만이 지상최대의 목표였던 시절, 그들에게는 주민등록증도, 플래티늄 카드도, 거추장 스러운 양복도 필요없었을 것이다. 현대사회를 살기 위해 주민등록을 하고, 편리한 소비생활을 위해 신용카드를 발급하고, 직장생활을 위해 양복을 입지만 밤섬에 사는 아무 것도 쓸모가 없다. 사회를 버린 김씨는 이제 생존의 욕구만이 최대의 목표이다. 주민증은 의미가 없다. 카드 따위도 필요없다. 양복은 벗어던진다. 잘 입고 잘 먹고 잘 자자. 독버섯이면 어떠리.. 일단 배를 채우자. 새가 먹고 죽은 생선이든, 그 생선을 먹고 죽은 새든 내 배가 부르면 그만이다. 목적이 단순해지니 삶이 편리해진다. 이것저것 잴 필요도 없다. 빨래세제로 머리를 감든, 오리배를 집으로 삼든, 솔방울로 골프를 치든, 컵 뚜껑으로 선그라스를 만들어 쓰든 내 맘에 들면 장땡이다. 험험..
남들의 시선을 의식한다는 것은 현대사회에서 생겨난 부담스러운 삶의 방식이다. 예쁜 얼굴, 명품 구두는 어쩌면 나에게 필요하다기 보단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뿐인지도 모른다. 예쁘고 제일 가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우리는 나에게 필요한 것들에는 전혀 신경을 쓰고 있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자신을 남에게 보여주는데서 만족을 찾는 것은 속이 빈 깡통처럼 한계가 있다. 방에 갇힌 김씨의 미니홈피에는 수십장의 화려한 사진들이 올라와있지만 정작 그녀는 말 한마디 없이, 얼굴은 창백하며, 옷은 볼품없고, 방은 너저분하다. 하지만 버려진 섬의 그녀만의 외계인에게는 예쁜 얼굴도, 명품구두도 필요가 없다. 그저 하얀 종이위에 쓰여진 진심어린 얘기만이 그녀를 표현한다. 누구에게도, 아무것에도 기대지 않은 그녀의 마음 속에서 우러나온 How are you ? Fine, thank you. 라는 말이 그녀와 세상을 이어줄 진짜 관심, 진심인 것이다.
| 12g 의 유혹
욕망. 그것은 고통의 시작임을 안다. 김씨에겐 강물에 떠밀려온 고작 12g일 뿐인 짜장스프가 고통의 시작이었다. 정백당. 덱스트린, 캬라멜, 향미증진제 따위의 혼합물이 한순간 김씨의 몸과 마음을 지배한다. 그러나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고 했던가. 짜장의 면을 만들기 위해 온갖 자생식물을 다 빻아보고 결국은 '주라기 공원을 만든 호박속의 모기'와 맞먹을 만큼의 커다란 발명, 새똥에서 밀씨 찾기가 시작된다. 버려졌던 물건들도 다시 사용한다. 새똥을 벗겨내는데 플래티늄카드를 쓰고, 양복과 케챱통은 허수아비가 되며, 빈 생수병은 슬리퍼가 된다. 삶이 또다른 방식으로 신불자 김씨를 진화하게 한 것이다. 김씨는 말한다. "욕망이 사람을 똑똑하게 만든다"
|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소금, 제일 가는 향수
주변에는 편리한 물건들이 참 많다. 음식을 보관해주는 냉장고,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자동차, 먼 곳에 있는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 휴대전화까지... 그러나 그것들은 사람을 단순하게 한다. 피자나 빵이 나무에서 자란다고 믿는 사람은 없겠지만 치즈와 밀가루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고민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먹고 싶으면 사먹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니까.
하지만 밤섬에는 아무것도 없다. 필요하면 석달이 걸리든 넉달이 걸리든 직접 만들어내야 한다. 짜장스프의 유혹에 못이겨 만들어진 스프만 홀랑 먹어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다시 짜장이 먹고 싶어질 때.. 그때는 다시 이미 만들어진 짜장스프를 찾아 주으러다닐건가? 여기서 김씨는 스스로 면을 만들 생각을 한다. 'Ready-made 스프'가 아닌 'Do it myself' 짜장면을 택한 것이다. 스스로 살아가려면 '낚아놓은 물고기' 대신 '물고기 낚는 법'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땀흘리며 '진짜 짠맛'을 느끼고 그 짠맛을 가장 비싼 향수를 담던 병에 담는다. 역시 "진화는 맛있어지는 과정이다"
그는 그녀가 보내준 중국집 짜장면도 돌려보낸다. 불어터진 Ready-made는 그것이 간짜장이든 삼선짜장이든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에겐 직접 만든 따뜻한 짜장면만이 진정한 희망이니까. ( 단! 나무젓가락이랑 단무지는 빼고.. ) 지금껏 172kcal 의 통조림 옥수수와 525kcal 의 생라면만 먹던 그녀도 그가 돌려받은 불어터진 짜장면을 통해 희망의 맛을 느낀다. 비록 불어터진 짜장면이지만 이제 짜장면은 두 김씨에게로 이어져 두 개의 희망이 된다... Congraturations... 진.짜.루.
| 죽는 건 언제든지 할 수 있으니까...
자살하는 사람(소통을 거부한 사람도 어찌보면 사회적 자살이다.)의 이야기를 들으면 전혀 그들을 이해 못하겠다가도 가끔 그들의 마음에 수긍이 갈 때가 있다. 세상이 그를 버렸으니, 그들도 그들만의 방법으로 세상을 버린다는데 혹하는 것이다. 하지만 결국 내 생각은 제 자리로 돌아온다.
'자살은 약한 자의 변명일 뿐이다. 자살할 용기가 있으면 그 용기로 살아봐라.'
하지만 자살을 결심한 이들에게 '그 용기로 살아보라'는 말은 그들에겐 오히려 비난일 수도 있다. 사회가 정해놓은 Rule 속에서는 살아갈 용기는 커녕 이미 삶의 의욕조차도 상실한 상태일테니까... 밤섬에서 당당하게 살던 김씨가 '생태보호구역'이라는 사회적 Rule 에 의해 밤섬에서 쫒겨나 다시 서울 도심에서 '살아갈 것'을 강요받게 되자 그는 또다시 죽음을 결심하고 63빌딩을 향하는 것처럼 말이다. 방에 갇힌 김씨 또한 자신을 다시 가두려고 한다. 애써 진심으로 다가가려던 마음이 멈칫한 순간 다시 마음의 문이 닫히고, 그녀가 관심받고자 했던, 그리고 그녀에게 관심을 주던 사람들이 어느새 그녀를 비난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사회적 Rule'이라는 것은 어찌보면 획일화된 잣대속에 우겨넣으려고 하는 억압일지도 모른다. 그 억압을 못견디는 이들이 선택하는 가장 극한의 일탈이 자살일 것이다. 그래서 두 김씨도 자살을 택한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다시 기회를 얻는다. 여자 김씨가 일년에 두번 도시가 멈추는 시간동안 남자 김씨에게 혼신의 힘을 다해 다가간 것이다. 예비군 싸이렌이 울려 잠시 도시가 멈추는 시간은 그에게 그리고 그녀에게 사회적 Rule 이 잠시 무력화되는 시간이라고 봐도 될 것이다. 1년 365일이 항상 희망일 수는 없지만, 가끔 한 두번 정도는 그래도 희망된 때가 있으니 그때를 기회삼으라며 용기를 주고자 하는 의미일 것이다. 비참하게 죽는 것보다는 힘내서 살아보는게 그래도 낫지 않느냐는 희망의 메세지일 것이다. 죽는 건 언제든지 할 수 있으니까...
